"그러든지 말든지" (창 6:5-12) 임승국 목사_2025.8.10

말씀 정보
• 채널명: 안양감리교회
• 업로드 일자: 2025-08-10
• 재생목록: 주일1부예배

말씀 요약

* LLM을 활용하여 요약된 결과입니다.

## 교회 설교 요약: "그러든지 말든지" ### 1. 주제 세상이 어떻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그러든지 말든지' 순종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삶 이 설교는 "교회는 그래도 해야 돼" (교회의 진취성과 사명 중심성)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하나님 소명을 향한 인내)라는 기존의 중요한 가르침에 이어, '그러든지 말든지'라는 새로운 가치를 더합니다. '그러든지 말든지'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어떤 상황에 처하든,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더라도, 하나님의 명령에 묵묵히 순종하며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 2. 주제로 묶인 핵심 내용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조롱과 외면, 고난 속에서도 묵묵히 하나님의 길을 걷는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설교는 이러한 '그러든지 말든지'의 믿음을 가진 인물들을 통해 그 의미를 심화합니다. * 노아: 죄악이 관영하고 모든 사람의 생각이 악했던 시대, 오직 노아만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의롭고 흠이 없는 자'로 하나님의 눈에 들었습니다. 그는 비가 오지 않는 시대에 거대한 방주를 만들라는 하나님의 황당해 보이는 명령을 세상의 조롱(추정)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다 하였고 꼭 그대로 하였다"고 기록될 만큼 철저히 순종했습니다. 노아의 순종은 상황이나 결과에 상관없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초점을 맞춘 '그러든지 말든지' 믿음의 표본입니다. * 예레미야 선지자: 백성들에게 매국노 취급을 받으며 비웃음과 비난, 심지어 투옥까지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의 삶은 핍박을 받든지 듣지 않든지, 하나님의 말씀 없이는 견딜 수 없었던 '그러든지 말든지' 순종의 모습이었습니다. * 에스겔 선지자: 하나님께서 이미 사람들이 그의 예언을 "듣든지 아니 듣든지"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을 알려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에스겔은 끊임없이 징조를 보이고 퍼포먼스를 행하며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청중의 반응에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전하는 자임을 보여주었습니다. * 호세아 선지자: 음란한 여인과 결혼하라는,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고멜과 결혼하고, 심지어 그녀가 떠난 후에도 다시 찾아 사랑으로 품어주라는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의 개인적인 감정과 세상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기 위한 뜻에 '그러든지 말든지' 따랐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 사람들의 박수를 받기 위해 오지 않으셨고, 십자가의 복음으로 인해 많은 무리가 떠나갔을 때도 당신의 메시지를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고난과 십자가의 길임을 아셨지만, 세상이 어떻게 반응하든 '그러든지 말든지' 그 길을 끝까지 가셨습니다. * 우리 선조들: 일제 강점기라는 가장 어두운 시대에 독립을 위해 싸웠던 선조들 역시 온갖 박해 속에서도 '그래도 끝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투쟁했으며, 다른 이들이 변절하고 포기하는 가운데서도 '그러든지 말든지' 굳건한 믿음으로 독립을 갈구했습니다. ### 3. 말씀을 통한 결론 하나님은 이 시대에도 세상 사람들이 비웃고, 비난하고,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어 보여도 오직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는 '그러든지 말든지'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의 기준은 다수가 선택하는 길이 아니라, 주님께서 가라 하시는 순종의 길입니다. 노아처럼, 예레미야처럼, 에스겔처럼, 호세아처럼, 그리고 예수님처럼, 또한 믿음의 선조들처럼, 우리는 상황이 어떻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끝까지 순종해야 합니다. 세상이 어떻게 반응하든, 내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우리는 오직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결단과 기도: 주님의 뜻대로 살기로 결단하며, 상황이 어떠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끝까지 순종하는 믿음을 구하고, 사람들의 조롱과 무관심 속에서도 맡겨진 사명을 묵묵히 감당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간구합니다.

말씀 자막

* 이 자막은 유튜브 스크립트에서 추출되었습니다.

그러든지 말든지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 제가 지금까지 사역했던 교회들이 몇 군데 됩니다 . 거기에서 배웠던 중요한 가치들 중에서 제 마음속에 제 사전에 한 문장 또는 한 구절로 남아 있는 멋진 말들이 어 여러 것 그 몇몇 마디 있습니다 . 교회는 어떠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그런 좋은 가르침들이었습니다 . 이전에 제가 인천에 있는 주한감리 교회에서 사역했었는데 제가 사역할 때에 생존에 계시지는 않았지만 이전에 중부연회 감독님이셨던 한경수 감독님께서 주한교회 목사님이셨습니다 . 한경수 감독님께서 남기셨다는 중요한 그런 말이 있습니다 . 교회는 그래도 해야 돼라는 말을 늘 강조하셨다고 해요. 교회는 그래도 해야 돼. 교회는 해야 발전하지 않해 가지고는 발전 안 해. 교회는 그래도 해야 돼. 그래도 강조하고 강조해야 돼. 이건 안 되리라 포기하면 안 돼. 포기하면 영영 안 돼. 교회는 원대한 포부를 갖고 계속 밀고 나아가야 해라고 하는 말씀을 아 주한교회 분들이 많이들 기억하고 있습니다 . 그래서 그때 주한감리 교회를 크게 부흥시키신 한 감독님의이 말씀은 주한교회에서 사역할 때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사역하는 상황 속에서 제가 움추어들고 또 쪼그라들 때마다 아니야. 그래도 해야 된다라고 하는 마음을가 갖게 했던 중요한 가르침으로 제 사전에 남아 있는 말입니다 . 안양 교회에 와서 또 이용택 다민 목사님으로부터 또 배웠던 이택 다민 목사님 늘 강조하시는 그 말씀도 제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네 아시죠? 그렇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교회는 그 그래도 해야 돼가 교회의 어떤 진취성 그리고 사명 중심적인 교회에 대한 말씀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명을 이루기 위해 인내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가르침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 적당히 하고 쉬고 싶을 때 그리고 너무 지쳐서 힘들 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를 되내면서 제 마음을 어 다시 이렇게 바로 잡을 때가 많습니다 . 심지어 우리 목회자들이 같이 모여서 이제 족구하면서 운동을 하거든요. 막 땀이 비 오듯이 쏟아지고 점수 차이가 많이 나서 이제 더 이상 따라잡기 어려울 것 같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라고 하는 말이 생각나는 거 보면 그 말씀이 제 마음속에 아주 깊이 새겨진 것 같습니다 . 한편 교회는 그래도 해야 돼.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에이어서 또 하나의 제 마음속에 오랫동안 남을 만한 한 마디를 최근에 들었습니다 . 그 말이 오늘 설교 제목인 그러든지 말든지입니다 .이 말은 최근에 큰기 사역을 위해서 논산 신은교회에 갔다가 신은교회 박지현 목사님으로부터들은 말입니다 . 충청도 사투리를 편안하게 쓰시는 분인데 근데 저도 충청도 출신으로서 아주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 . 여러분이 들으시기에 그러든지 말든지라고 하는이 말이 여러분 들으시기에는 좀 부정적인 느낌처럼 들리실 수도 있겠는데 제가 이제 이에배도 충남사투리 고급 사용자인데 제가 듣기에는 굉장히 그 진 어 굉장히 좀 어떤 강력한 의지가 느껴지는 말로 들렸습니다 . 맥락을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 신은교회 박지현 목사님은 담민목회를 이제 논산에서 담민 목회를 시작하신지 몇 년 안 되셨습니다 . 정말 시골이에요. 충남과 전라도 전북의 경계에 있는 그런 동네입니다 . 그 처음에 부임하니까 동네에 할머니, 할아버지들 밖에 계시지 않고 크지도 않은 그 마을에 감리 교회와 장로 교회가 또 있는데 장로교회 다니는 분들과 감리 교회 다니시는 분들이 서로 사이가 또 안 좋다는 거예요. 또 어 시골마을 가장 또 굉장히 처회한 싸움의 그 주제죠. 2장을 누가 하냐?이 문제 가지고도 분쟁이 있는데 목사님이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고 합니다 . 전도를 하려고 하는데 할머니 한 분이 아 목사님 뭘 전도를 해요. 마을에 올 사람도 없시오. 이러면서 전도를 자꾸 하지 말라고 그러는 거예요. 전도해 봤자 소용 없다 . 아 목사님 뭘 그런데 돈 들리고 시 시간 드립니까? 이러면서 자꾸 하지 말라고 하더라는 거예요. 그때에 박지원 목사님이이 상황에 대해서 자기가 뭘 선택했냐 그러든지 말든지 나는 전도했다 라고 이야기를 해 주시더라고요. 감리 교회, 장로교회 사이가 별로 안 좋아도 2장을 누가 하는지 문제가 막 그 문제 때문에 서로 눈치 보고 마을에 참바람이 불어도 매번 마을 회관에 먹을 건 사들고 가서 할머니 할아버지들 인사드리고 교회 한번 오시라고 말씀드려도 아무도 정말 아무도 오지 않을 그때에도 박지원 목사님은 그러든지 말든지 계속했다고 하십니다 . 좋은 기회가 되어서 기독교 방송국에서 다큐 형식으로이 목사님의 사역하는 모습을 이제 촬영하기로 했는데 PD가 묻더랍니다 . 아, 목사님 그런데 목사님 전도를 열심히 그렇게 열심히 하시는데 혹시 몇 분이나 교회에 새로 나오셨어요? 여러분 기독교 방송국에서 촬영하는 거 정말 좋은 기회입니다 . 근데 좋기는 한데 유독 그 질문을 듣고 나서 마음에 걸려서 며칠 동안을 잠을 못 잤다고 해요. 왜냐하면 그때까지 한 분도 새로 나온 분이 없으니까 아 내가 괜한 수고를 하고 있나? 헛된 노력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 한 분도 안 왔어요.이 말을 하기가 너무 싫다는 거예요. 그래도 그러든지 말든지 계속 문을 두드리고 마을 어르신들 인사드렸더니 아 정말 감사하게도 저희 큰기 하기 아 바로 한 주 전에 한 분이 또 나오셨고 큰 각꾸기 다녀온 후에 저희 팀이 전도하러 다녀왔던 그 연마을에서 또 한 가정 이렇게 한 내외 분이 또 나오셨다고 합니다 . 우리 박지현 목사님의 간증은 여러분 주보에 이게 이미지 광고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그래서 제가 아 이런 이런 일들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 큰 숙각꾸기 팀을 사용하신 것도 있겠지만 저는이 박지현 목사님의 간증을 들으면서 아 하나님께서 박지현 목사님의 그러든지 말든지 전도하는 마음을 사용하셨구나라고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을 이루는 곳입니다 . 교회는 상황이 어려워도 그래도 해야 합니다 .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감당하는 사람들입니다 . 그리고 저는 여기에 그러든지 말든지를 제사전에 조심스럽게 붙여 봅니다 .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남들이 어떻게 바라보든지 남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그러든지 말든지 그리스도인은 사역자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묵묵하게 감당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여러분도 세상 속에서 살아가시면서이 세상이 그러든지 말든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오늘 아침 우리가 읽은 본문에도 세상 사람들이 그러든지 말든지 하나님께서 주신 그 사명을 끝까지 붙드는 한 사람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 그의 이름은 노아입니다 . 노아의 이름이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창세기 5장에 아담의 족보 끄은 머리에서입니다 . 창세기 5장 28절 29절입니다 . 라멕은 182세의 아들을 낳고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심으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이 아들이 안하리라 하였더라. 창세기 5장의 족보에서는 아담의 그 자손들이 몇 년을 살고 죽었는지를 기록하고 있는데 해를 계산해 보면이 노아는 아담이 죽은 후에 태어난 첫 번째 사람입니다 . 아담의 범죄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땅을 저주하셨고 라멕은 아들을 낳고는 안위라고 하는 뜻에 노아라고 하는 이름을 그 아들에게 붙였습니다 . 이제는 삶의 고통과 불행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구원해 주시기를 갈구하는 그런 소망을 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 하지만 안타깝게도 노아의 시대는 정말 죄악으로 가득한 시대였습니다 . 창세기 6장 5절부터 7절입니다 . 여호와께서는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이전에 우리가 보던 개혁 한글판 성경에서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했다 라고 하는 말로 번역을 했었습니다 . 관영했다 . 꿰뚫을 관 살 영자를 써서 가득차서 흘러넘치는 상태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 죄악이 흘러넘치는 상태는 어느 정도의 상황일까요? 5절 말씀을 보니까 뭐라고 하냐면 사람들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여러분 하나님께서 분명히이 세상을 처음 만드실 때 어떻게 만드셨다고 하셨습니까? 창세기 1장 31절에 보니까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고 하셨었는데 근데 이제는 거꾸로 돼서 사람의 악으로 가득찬 지경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 아담과 하와의 죄로부터 시작된 악이 세균이 퍼져 나가는 것처럼 곰팡이가 막 번성하는 것처럼 이제는 모든 것이 항상 악할 정도로 이게 보편화되고 또 심화되었습니다 .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좋아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제는 사람 지으신 것을 마음속으로 한탄하셨다 . 마음에 근심하셨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그래서 하나님께서 심판을 결심하셨습니다 . 사람뿐만 아니라 지면에 있는 모든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도 쓸어 버릴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 그런데 한 사람만은 예외였습니다 . 8절을 새로 번역한 성경으로 보면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의 눈에 들었다 . 여러분 같이 한번 읽어 보실까요?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의 눈에 들었다 . 군계일학, 낭중 지충 이런 사자 성어를 아시지요? 모두 비슷한 뜻의 사자 성어입니다 . 닭 무리 속에 하기 한 마리 있으면 학기 돋보이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손곳을 주머니 속에 감춘다고 해도 손곳이 뚫고 나오게 말 마련입니다 . 죄악이 관영한 세상 노아는 어떻게 하나님의 눈에 그렇게 들었을까요? 9절 말씀입니다 . 노아의 역사는 이러하다 . 노아는 그 당당 당당대에 의롭고 흠이 없는 사람이었다 .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다 . 노아에 대한 평가는 놀랍습니다 . 세상은 악으로 가득했지만 노아는 의로운 사람이었고 당대의 완전한 자였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성경에서 의롭다는 말은 어떤 뭐 도덕적이다 , 윤리적이다 이런 말이 아니고 하나님과의 관계의 올바름을 이야기합니다 . 흠이 없는 사람이다 라고 하는 말도 이게 도덕적인 흠결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라 온전하다 , 한 마음이다 라고 하는 뜻입니다 . 그러니까 노아는 어떤 사람이었냐? 삶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고 온전한 마음 한 마음으로 섬기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똑바로 형성했던 사람이었다라는 말입니다 . 이것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 9절 후반절에도 있는 말씀인데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 동행한다는 것은 함께 걷는다는 말이죠. 여러분, 누군가와 동행하려면 수만 갈래 길이 있는 중에 동행하는 사람과 한 마음으로 한 길을 걸어야 할 것입니다 . 무엇보다도 목적지가 같아야 동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노아가 하나님의 눈에 들었던 이유는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께서 가시는 그 길을 함께 걸었기 때문입니다 . 한편 세상은 그와는 정반되었습니다 . 창세기 6장 11절 12절입니다 . 그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창세기는 노아가 샘, 함, 야벳이 세 아들을 낳았음을 소개하면서 다시 한번 그때의 세상의 상황을 이야기를 해 주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만드신이 세상이 썩어 버렸다는 거예요. 근데 그 이유는 뭐냐? 포악함, 폭력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 포악함, 폭력이이 땅에 가득하면 땅이 부패합니다 . 포악함이라고 번역된 하마스라고 하는 히브리어는 예언자들이 심판에 관해서 설교할 때 주로 사용했던 바로 그 말입니다 . 아모스 선지자가 북 이스라엘을 향해서 예언하면서 이스라엘의 하마스가 가득하다라고 예언했을 때에 북북 이스라엘은 결국 아수르에 의해서 멸망당했습니다 . 에스겔 선지자가 남국 유다를 향해서 이제 하마스가 가득하다라고 예언했을 때에 남한국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당했습니다 . 노아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하나님의 길을 걷고 있는 바로 그때에 세상이 어땠어때 어떻게 되었었다고요? 12절을 지격하면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자기의 길을 부패하게 만들었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이 아침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은 메시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세상에는 언제든지 포악함과 폭력이 있습니다 . 자기의 길을 부패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우리는 인생을 흔히 인생길이라고도 부르는데 누구나 그 앞에 우리가 살아가야 할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 있음에도 그 길 자체를 부패하게 만들고 그 길을 제대로 걷지 않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눈여겨 보신 하나님의 사람 노아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 그는 그의 앞에 놓인 그 길을 부 부패시키지 않고 그 길을 하나님과 함께 걸었던 사람입니다 . 그의 삶은 그렇기 때문에 의롭고 흠이 없었다 라고 평가받을 수 있었던 것이죠. 세상 사람들이 그러든지 말든지 하나님과 함께 길을 걸었음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부패한 세상에 대해서 홍수로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 그와 동시에 노아에게 노아야 나무로 어떤 형태로 방주를 만들어라 만들어라라고 하는 구체적인 지시를 주셨습니다 . 노아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그 말씀은 다소 무서우면서도 황당한 말씀이었습니다 . 엄청나게 큰 방주를 지으라라고 하는이 지시는 500살을 넘어서 600세를 향해 가고 있는이 노아에게 체력적으로도 어려운 일이었겠지만 이게 몸만 힘든 것이 아니라 아마 마음도 너무 힘든 일이었을 것을 확신합니다 . 어릴적 교회학교에서 노아의 방주에 대한 이런 설교 말씀을들을 때면 항상 선생님들께서이 본문의 행간을 짚어 주셨습니다 . 실제로 성경에 여러분 읽어 보시면 노아가 어디에서 방주를 만들었는지 그리고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사람들이 노아를 뭐 조롱했는지 아닌지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 하지만 교학교 선생님들은 항상 저희에게 이야기해 주실 때 노아가 산꼭대기에서 방주를 만들었다 . 그리고 그 그 모습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노아를 맨날 아유 바보라고 그러면서 막 조롱했다 라고 설명해 주셨어요. 그게 기억에 남습니다 . 비록 성경에 기록된 내용은 아니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노아가 방주를 만드는 동안 사람들은 노아를 미쳤다고 이야기했을 거예요. 없었을 거예요. 그러나 노아가 그런 상황 가운데서도 그러든지 말든지 방주를 꿋꿋하게 만들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아니, 이유 같은 건 없었습니다 . 22절 말씀입니다 . 노아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다 하였다 . 꼭 그대로 하였다 . 너무 멋진 말씀이지 않습니까, 여러분? 한번 같이 읽어 보실까요? 시작. 노아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다 하였다 . 꼭 그대로 하였다 . 아멘. 그냥 했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명하셨으니까 다 한 것이고 그리고 꼭 그대로 했다라는 것입니다 . 성경에는 노아 외에도 그러든지 말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끝까지 순종했던 이들이 있습니다 . 그들 역시 세상의 조롱, 외면, 고난 속에서도 묵묵히 하나님의 길을 함께 걸었던 사람들입니다 . 그들은 남들이 뭐라고 하든지 어떻게 살아가든지 나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그 길을 걸어가겠다 라면서 자신의 삶으로 증명했던 증언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예레미야 선지자입니다 . 예레미야 선지자는 소명 받을 때부터 고난이 예고된 사람이었습니다 .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죠. 그들이 너를 치나 너를 이기지 못하리니이는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근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하셨어도 현실적으로 보기에는 진짜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 예레미야 얼마나 고통을 많이 받았냐면 예레미야에게 붙여진 그 별명이 눈물의 선지자예요. 백성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 예루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이라고 하는 예언을 전할 때마다 사람들은 너 매국로냐며 비웃고 그리고 또 비난하고 심지어 예레미야를 거짓말 장이라고 하면서 감옥에 가두기까지 했었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외쳤어요. 예레미야 20장 9절 말씀입니다 .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의 사무친이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 그러니까 어떻게 해요? 세상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핍박을 하든지 아니하든지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 이것이 바로 그러든지 말든지 순종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 또 다른 예가 에스겔 선지자입니다 .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 에스겔 2장 5절 말씀. 그들은 폐역한 족속이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 선지자가 있음을 알지니라.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이 선어 이제 예언을 전하는 그 말씀이 사람들에게 먹히지 않을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 하지만 에스겔은 계속해서 징조를 보이고 성읍의 모형을 만들어서 포위 공격을 막 재연하고 머리카락과 수염을 깎아서 불태우고 바람에 흩날리는 퍼포먼스를 하면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 그런데도 백성들은 듣지 않았어요. 그래도 에스겔은 그러든지 말든지 계속했습니다 .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의 사람은 청중의 반응에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전하는 사람입니다 . 호세야도 있습니다 . 호세야 1장 2절. 여호와께서 호세야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이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호세야에게 실제로 부정한 여인 음란한 여인과 결혼하라라고 명하셨습니다 .이 결혼은 인간적으로 볼 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 그러나 호세야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했어요. 그런데 이거 이게 웬걸 아내가 결혼했는데도 아내가 떠나서 다른 남자의 품에 안긴 후에도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셔서 다시 찾아가서 그를 속량하고 사랑으로 안아 주어라. 왜요? 하나님께서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이기를 원하셨던 거예요. 호세아의 개인적인 어떤 상황과 감정으로는 그거 할 수 없겠지요. 그러나 호세아는 그러든지 말든지 또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바라보든지 말든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았던 선지자였습니다 . 무엇이이 사람들을 이렇게 움직였습니까? 여러분, 딱히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에요. 이해가 되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 다른 사람들이 어디로 가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동행 그것 그것이 바로 그들에게는 유일한 기준이었던 것입니다 . 신약으로 오면 가장 분명한 예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 예수님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셨습니다 . 예수님께서 어 여러 가지 기적을 베푸시고 또 정말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또 전하시자 사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 몰려왔습니다 .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루는 십자가의 복음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 내가 죽어야 할 것이다 . 그랬더니 그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아이 말씀은 어렵다라고 하면서 떠나는 무리들이 많았습니다 . 제자들마저 혼란스러워할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붙잡지 않으셨습니다 . 얘들아 아 내가 너무 심했나? 조금 부드럽고 조금 쉽게 이렇게 좀 이렇게 편하게 이야기를 해야 할까? 그래야 사람들이 안 떠나려나? 내 기조를 좀 바꿀까? 이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 제자들에게도 그저 너희도 가려느냐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주는 길이 고난과 십자가의 길이라는 것을 아셨지만 또이 세상 가운데 유대인과 또 여러 가지 많은 그런 어 그 예수님 핍박하는 상황들이 많은 가운데서도 그러든지 말든지 그 길을 끝까지 가신 분이십니다 . 오늘 광복 80주년 기념주의를 맞으면서 어쩌면 가장 어두운 일제 시대에 대한 독립을 위해서 싸웠던 선조들에게도 또 이러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온갖 박해 속에서도 그래도 끝까지 투쟁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싸웠고요. 다른 사람들이 변절하고 포기하는 가운데에서도 그러든지 말든지 굳은 심질을 가지고 끝까지 독립을 갈구했던 우리 선조들이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대에도 하나님은 그러든지 말든지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 사람들이 비웃어도 사람 세상이 비난해도 열매가 없어 보여도 여러분 우리의 기준은 다수가 선택하는 길이 아니고 주님께서 가라 하시는 길 바로 순종입니다 . 노아처럼, 예레미야처럼, 에스겔처럼, 예수님처럼 또 그 이후에 바울과 오늘 우리가 함께 또 함께 생각했으면 하는 이런이 일제 시대에 끝까지 독립을 위해서 싸웠던 어떤 믿음의 성 선조들 그들처럼 여러분 하나님의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말씀에 끝까지 순종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상황이 어떻든 교회는 그래도 해야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나아가야죠. 세상이 여러분의 주변 세상이 또 여러분의 주변 사람들이 그러든지 말든지 여러분 믿음으로 순종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나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오늘이 시간 함께 같이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라고 하는이 찬양으로 함께 결단하고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 함께 기도할 때 여러분 오늘들은 말씀 상황이 어떻든지 하나님 말씀에 끝까지 순종하는 믿음 주시고 그러든지 말든지 우리에게 맡겨 주신 사명 묵묵하게 감당하게 해 달라고 노아처럼 예레미야 에스겔 호세야처럼 사람들의 반응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 따라 살게 해 달라고 우리 함께 같이 그렇게 결단하고 기도하는 시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 우리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겠습니다 .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서 지 우리 다시 한번 1절로 찬양합니다 . 주님 뜻대로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는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귀돌아서이 세상 사람 날 몰라줘도이 세상 사람 날 몰라줘도이 세상 사람 날 몰라줘도이 세상 사람 날 몰라도 뒤돌아서이 세상 사람들이 그러든지 말든지이 세상 사람이 세상 사람 날 몰라줘도이 세상 사람 날 몰라줘도이 세상 사람 날 몰라줘도 뒤돌아서 지 세상 등지고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 듬지고 십자가 보네. 귀돌아서지. 우리 마지막으로 세상 등지고 세상 등지고 십자가 오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뒤돌아서 우리 함께 말씀 기억하며 기도할 때 주여 믿습니다 . 외치고 기도합니다 . 주여 믿습니다 . 하나님 오늘이 아침 하나님께서 주신이 말씀 가지고 하나님 우리 마음에 새깁니다 . 상황이 어떠하든지 하나님 말씀에 끝까지 순종하는 믿음 주시옵소서. 세상은 자기의 길을 부패함부 부패하게 만들면서 그 길을 걷지 않지만 세상이 끌어든지 말든지 맡겨진 사명을 우리가 묵묵히 감당하게 주님 우리를 도와 주시옵소서. 노아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며 의롭고 흠없는 길을 걷게 하기를 걷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 노아에게 주신 그 말씀 하나님 세상을 생각하면 세상 사람들 생각하면 하나님 쉽게 순종하지 못할 일이었지만 세상이 그러든지 말든지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꼭 그대로 하였다는 그 말씀과 같이 하나님 우리도 노아와 같이 순종하며 나아갈 수 있도록 주님 도와주시옵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순종하게 하시고 하나님 세상이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하며 주님 따라가고 주님과 동행하는 우리들 되게 주님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레미야와 같이 에스겔과 같이 호세와 같이 하나님 사람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의 모든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 그들의 상황이 어떻든지간에 하나님 말씀하신 것을 끝까지 이루어내는 하나님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오니 주님 우리에게 믿음 주시고 끝까지 순종하며 나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하시면 하나님 그 말씀 따라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나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 주님 우리를 도우시고 하나님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를 도우시고 함께하여 주셔서 오늘이 아침 우리가 결단하고 나아갈 때 하나님 우리의 마음에 우리의 삶에 온전한 변화가 있게 하여 주시고 주님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주와 주시옵소서.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저희를 말씀 앞으로 불러 주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의 상황이 어떠하든지 오직 주님의 말씀에 끝까지 순종하는 믿음을 우리에게 주시옵소서. 사람들의 조롱과 무관심 속에서도 그러든지 말든지 맡겨진 사명을 묵묵히 감당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노아처럼 주님과 동행하며 의롭고 흠없는 길을 걸어가게 하시고 예레미야와 에스겔 호세야처럼이 세상 사람들의 반응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우리 주 예수님처럼 십자가의 길을 기꺼이 선택하는 담대함과 순종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주신 그 사명을 끝까지 지켜 행하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와 우리 모든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

주요 단어

# Word Count
1 하나님 87
2 사람 73
3 세상 48
4 말씀 45
5 노아 43
6 교회 31
7 30
8 24
9 23
10 23
11 21
12 20
13 18
14 마음 17
15 순종 16
16 상황 15
17 동행 14
18 예레미야 12
19 부패 11
20 에스 11
21 11
22 예수 11
23 생각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