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은 본문을 가지고 교회의 소망이 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 이번 휴가 때 저는 가족과 함께 영화관에서 영화 킹 오브 킹스를 보았습니다
. 어,이 영화는 예수님의 생애를 감동적으로 다른 애니메이션입니다
. 그런데 저는 그만 베드로가 무리를 걷는 장면에서 잠이 들어버렸어요. 몇 년 만에 찾아간 영화관이었고 그리고 휴가인만큼 조금 좋은 데서 영화를 보자 해서 리클라이너 그 누워서 보는 의자가 있는 영화 간에서 영화를 봤거든요. 발도 올리고 또 등도 이렇게 누쳐서 누워서 영화를 보니까 잠이 아주 잘 오더라고요. 영화가 끝나고 저나 저희 딸들이 저를 향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 엄마 어떻게 그 장면에서 잠을 자베드로가 무리를 걷다가 물속에 빠졌는데 예수님이 손을 내밀어서 건져 주시는 그 멋진 장면을 놓쳤잖아. 어 저는 아 엄마 그거 유튜브에서 짤로 다 봤어. 그리고 엄마는 하루에 대여섯 시간밖에 못 자니까 엄마 지금 잠이 필요해.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 됐어."라고 라고 말을 했지만 정말 많이 민망했습니다
.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 보니 베드로가 무리를 걷는 장면이 그냥 영화속 화려한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용기를내어 물 위를 건넜지만 바람과 파도를 보고 두려워하며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 그때 예수님은 그를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손을 내밀어 구회해 주셨어요.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면서 베드로를 건져 주시죠.이 이 장면이 우리의 삶과 너무나 닮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가지만 두려움과 연약함 때문에 자주 넘어집니다
. 가라앉아요. 또 세상은 완벽함을 추구하고 완벽함을 강요합니다
. 사람들은 소셜 미디어에 완벽한 삶을 올리려 애쓰고 직장에서는 늘 최고의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을 받습니다
. SNSN에는 완벽한 여행 사진, 완벽한 가정, 완벽한 커리어가 넘쳐납니다
.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은 다 알아요. 완벽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 그럼에도 우리는 조금만 더 하면 이것만 바꾸면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끝없이 달립니다
. 교회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있습니다
. 더 바른 신앙, 더 나은 예배, 더 열심히 봉사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습니다
. 물론 신앙생활에서 훈련과 노력은 소중합니다
. 하지만 그보다 앞서야 할 것이 있습니다
. 바로 우선순위입니다
. 구원자 예수님 없이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고백, 예수님만이 내 삶의 주인이라는 믿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장 7절과 8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 우리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바울은 이제껏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 자랑할 만한 가문 남들이 러어러 볼 만한 지식 그동안에 한치에 쉴 수도 없도록 해왔던 율법에 대한 열심이 모든 것을 버리고 배설물로 여기고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두었습니다
.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예수님으로 삶이 가득한 가득 채워졌기 때문입니다
. 저는 오늘 베드로의 여정을 통해 예수님의 은혜와 교회의 소망을 발견하고자 합니다
. 베드로는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연약함을 반석으로 삼으시고 그 믿음 위에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 우리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 그 어느 누구일지라도 결코 완벽할 수 없습니다
. 그러나 예수님의 은혜 안에서 우리는 완전해질 수 있습니다
. 한 선교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선교 활동을 하면서 많은 그 성경 메시지를 전하는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베드로를 좋아한다
합니다
. 이유를 들어보니 그 성경 속에 수다한 인물 중에서 베드로가 보여주는 언행의 모습들이 본인들의 모습들과 상당히 닮았다고 느끼기 때문이래요. 굉장히 열정적이나 예수님의 말씀의 참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경솔하기 그지 없는 모습. 정말 멋진고 훌륭한 그런 신앙 고백을 했음에도 정작 무슨 일을 또 겪게 될지 모르고 섣부르게 자신감을 표현하는 모습. 순간 불쑥불쑥 내뱉어 버리는 바보 같은 언행들에서 이제 본인들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죠.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베드로 예수님의 수제자 1등 제자로 일컬어지는 베드로의 모습에서 여러분의 모습이 보이지는 않습니까? 오늘 시몬 베드로를 통해 여러분 자신을 돌아보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 또한 시몬 베드로를 통해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신 그대로 숱한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베드로를 반석으로 삼아 교회를 세우신 그 예수님의 놀라운 일하심의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 베드로의 여정은 예수님을 처음 만난 순간에 시작되었습니다
. 요한복음 1장 41절과 42절에서 안드레가 베드로를 예수님께 데려오면서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라고 전합니다
. 함께 읽을까요?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하고 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시되 내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바라 하리라 하시니라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베드로는 생드레를 통해 예수님을 처음님은 은 그를 보시자마자 너는 개바 즉 반석이라 이름 지으셨습니다
.이 이름은 단순한 별명이 아니었습니다
. 예수님은 베드로의 미래 그의 사명을 보셨습니다
.이 첫 만남은 베드로가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첫만남은 누가복음 5장의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 게네살의 호수에서 베드로는 밤새 물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건지 못했습니다
. 베테랑 어부였던 그는 피곤하고 짜증난 상태로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 그때 예수님이 나타나 배를 빌려 달라고 하십니다
. 베드로는 이미 예수님을 알고 있었기에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순종했습니다
. 예수님은 말씀을 전하시고 나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이 이 명령은 터문이 없었습니다
. 베드로는 어부였어요. 고기 잡는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 고기를 잡는 것은 베드로의 일상이자 베드로가 가장 잘하는 주특기였습니다
. 다시 말하자면 고기를 잡는 것은 어부 베드로가 목수였던 예수님께 코치를 받을 만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 오히려 코치를 해 줄 수 있는 일,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충분히 알아서 잘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 그런데 지금 예수님이 어부 베테랑인 베드로가 밤새도록 애써도 잡지 못한 그 고기잡이를 다시 시키신 것입니다
. 저군다나 일평생이 물고기 잡이를 해오면서 터득했던 상식 개네살의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으려면 밤에 그물을 던져야 한다라는 기본 중의 기본을 무시하는 비합리적인 얘기를 하신 것입니다
. 실제로 어 과학적 생물학적 근거예요. 잠이 되면 그 물의 표면 온도가 내려가고 플랑크톤이나 작은 물고기들이 수면 위로 수면 가까이로 올라옵니다
. 그래서 이것들을 먹고 사는 커다란 물고기도 함께 올라옵니다
. 따라서 어부들은 주로 밤에 불을 밝히고 물고기대를 유인해서 고기를 잡습니다
. 반대로 낮에는 햇빛이 강하니까 물의 온도가 높아집니다
. 그러니까 물고기들은 차갑고 어두운 물 속으로 들어갑니다
.뿐만 아니라 이제 그 날이 밝으니 낮에는 물고기에 시야가 좋아져서 그물을 던졌을 때 그물을 잘 피해 다닐 수 있게 있습니다
. 따라서 어부들은 낮조업을 거의 의미 없는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 이것이 상식 중에 상식,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 그러니 베드로에게 지금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물고기가 없는 곳으로 가서 잡을 수 없는 방법으로 아무것도 잡지 못할 것을 잡으려고 해라라는 아주 비상적인 명령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 그런데 베드로가 이렇게 응답합니다
.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세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만은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 베드로는 예수님의 권위를 믿고 순종했습니다
. 결과는 어땠습니까? 고기 잡은 것이 심이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그물이 찢어질만큼 많은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 지금 일어난이 일을 우리의 상식선에서 객관적으로 말해 보자면 전혀 상식적이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은 방법으로 시작된 일이 예상 밖의 결과, 상식 밖의 결과를 얻은 일로 보입니다
. 그러나 지금이 일을 우리의 상식과 방법을 넘어선 믿음의 영역으로 말해 본다면 전혀 상식적이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지만 우리 삶의 주인이시며이 세상의 모든 것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시작된 일입니다
. 부유한 믿음의 응답으로 충만한 은혜의 결과를 얻은 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이 같은 일은 응당 예수님이 우리에게 얼마든지 해 주실 수 있는 일입니다
. 예수님이라면 능히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 예수님은 우리의 상식을 너근히 넘으시고 우리가 합리적이라고 판단하는 것을 걷든히 넘겨 버리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상식적이지 않고 합리적이지 않은 일을 명하실 수 있었고 그 결과 또한 상식을 넘어 합리적인 판단을 넘어 그물이 찢어질 정도의 수학을 거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 그런데 예수님이 이와 같은 일을 행하신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 예수님은 한 번 더 상식적이지 않고 합리적이지 않은 일을 행하시려 하신 것입니다
. 그것은 베드로를 고기 낚는 어부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신 것입니다
. 누가복음 5장 10절 말씀입니다
.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내가 사람을 취하리라. 베드로는 갈릴리 바닷가 출신의 어부를 어 삼고 오직 자신의 경험과 상식에 의존하는 삶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 정식으로 율법에 대해서는 배운 적이 없었고 학문이 없는 사람이었고요. 활력이 넘치고 감정 표현에 솔직하지 못해 자주 불같이 다열적인 성격의 사람이 바로 베드로입니다
. 특출할 거 하나 없는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하디 평범한 사람이 베드로입니다
. 그런데 예수님은 바로이 베드로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신 것입니다
. 평생 고기만 낚아온 어부의 사람을 이제는 사람을 낚는 사람을 취하는 사람을 세우는 사람으로 살게 하신 것입니다
. 여러분, 예수님의 부르심은 베드로가 가진 모든 자격을 너끈히 넘겨 버리신 부르심입니다
. 예수님의 부르심은 베드로가 가진 모든 능력을 걷든히 넘겨 버리시는 부르심입니다
. 예수님의 부르심은 베드로라는 한 사람을 부르신 동시에 베드로의 삶을 반석으로 삶아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한 부르심입니다
. 이렇게 예수님은 우리의 상식과 경험을 넘어선 분입니다
. 우리의 실패와 한계 속에서도 그물을 던져라고 말씀하십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서 어떤 상황이 상식적으로 불가능해 보입니까?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이 말씀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 예수님이 그곳에서도 일하십니다
. 찬양 주가 일하시네 가사가 떠오릅니다
. 날이 저물어갈 때 빈들에서 걸을 때 그때가 하나님의 때 내 힘으로 안 될 때 빈손으로 걸을 때 내가 고백해 여호와 이래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주께 아끼지 않는 자에게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신뢰하며 걷는 자에게 우리의 실패와 함께 그 자리에서도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가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약 3년 후에 베드로는 다시 업으로 돌아갑니다
. 요한복음 21장에 기록되어 있는데요. 그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그 재책감과 실패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받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에 이제 다 끝났다
라고 생각하고는 그는 다시 익숙한 고기잡이로 돌아갔습니다
. 놀랍게도이 장면은 누가복음 5장과 거의 동일합니다
. 익숙한 각오로 돌아갔지만 밤새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 요한복음 21장 3절입니다
.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날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그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이에 베드로가 그대로 행했고 그랬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베드로는 순종했고 결과는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의 수학이었습니다
. 처음 예수님이 베드로를 부실 때 상황과 너무나도 흡사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 3년 전에도 베테랑 어부였던 베드로는 고기 잡는 일에 실패했었는데 이번에도 베테랑 어부 베드로는 또 고기 잡는 일에 실패하고 맙니다
. 그리고 3년 전에도 베테랑 어부가 실패한 그 현실 앞에서 예수님이 상식적이지 않고 합리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그물을 그물이 찢어질 정도의 수학을 얻게 하시더니 이번에도 역시 그의 삶에 나타나셔서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의 수학을 거두게 하십니다
. 너무나도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난 것입니다
.이 이 반복된 사건은 우리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 내가 겪은 모든 실패 속에서도 나는 너와 함께 있다
. 내가 느낀 모든 아픔 속에서도 나는 너와 함께 있다
. 내가 느낀 모든 자절 속에서도 나는 너와 함께 있다
. 내가 느낀 모든 절망 속에서도 나는 너와 함께 있다
. 정말이지 예수님은 단 한 순간도 베드로를 홀로 두지 않으셨습니다
. 여기서 제가 좀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있었다가 아니라 있다
입니다
. 어, 즉 과거의 어느 한 때 또는 과거에 어떤 한 사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과거서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지금부터 앞으로 계속해서 모든 날 동안에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있다
. 한시도 한 순간도 단 한 번도 우리를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 예수님은 임마누엘로 약속하신 대로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순간에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 너무나 비슷한 일 아니 거의 똑같은 일을 한 번 더 경험한 베드로에게 그다음에 예수님이 하신 일은 그를 먹이시는 일이었습니다
. 예수님은 직접 조반을 먹이시고 밥을 차려 먹이시고 다시 말씀도 먹여 주십니다
. 내 어린 양을 먹여라. 내 양을 쳐라. 내 양을 먹여라.이 이 말씀은 단순한 명령이 아닙니다
. 예수님은 베드로의 실패를 아시고도 그를 회복시키시고 다시 사명을 주셨습니다
.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의 실패를 끝으로 보지 않으십니다
. 예수님은 우리를 다시 부르시고 우리를 새롭게 사용하십니다
. 오늘 본문 마태복음 16장 16절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고백했죠.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다
. 이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너는 베드로라. 내가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여기서 반석은 무엇입니까? 원어로 보면 베드로는 남성 명사 페트로스이고 반석은 여성 명사 페트라입니다
. 일부 학자들은 반석을 베드로의 사도적 역할이라고 보지만 저는이 반석이 베드로의 믿음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이라고 봅니다
. 바로이 믿음 위에 교회가 세워집니다
. 에베소서 1장 22절과 23절은이를 분명히 합니다
.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무리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십니다
. 골로새서 1장 18절에서도 그는 몸이 그의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릿시라고 말씀하십니다
. 에베소서 4장 15절과 16절도 말합니다
. 우리 함께 읽습니다
.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니라. 아멘. 교회는 예수님을 구원자와 주인으로 고백하는 믿음 위에 세워집니다
.이 믿음은 우리의 연약함을 예수님의 은혜로 완전케 합니다
. 예수님은 완벽하지 않은 우리를 완전하게 하십니다
. 숱한 실패와 자절 속에서도 예수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새롭게 사용하십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삶에서 어떤 폭풍이 여러분을 멈추게 했습니까? 예수님은 오늘도 여러분을 부르셔서 말씀하십니다
. 그물을 던져라. 내 양을 먹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예수님의 부르심이 살아 있는 곳입니다
. 교회는 예수님의 뜻대로 양을 먹이고 돌보는 곳입니다
. 교회는 예수님의 뜻대로 먹이고 돌보는 일이 계속해서 이어지게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 그러나 우리는 이런 일들을 완벽하게 해낼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 계속해서 실패하고 좌절하고 무너지며 쓰러질 것입니다
. 베드로가 그랬듯 예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신 만만하게 믿음을 자랑하다가 예수님이 실패한 듯 보였을 때 우리도 예수님을 모른다
부인하며 도망칠 것입니다
. 그리고 죄책감과 실패감에 사로잡혀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내 눈 앞에 나타나셨음에도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런 베드로에게 한 번 더 이전의 일들을 반복해서 경험하게 하심으로 예수님 자신을 드러내시며 그를 먹이시고 살려내셔서 완전하게 하셨듯이 오늘 우리의 삶의 모습이 완벽하지 않아도 예수님의 은혜로 완전하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 그것도 부요한 은혜로, 충만한 은혜로 완전하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 이것을 믿으며 나아가는 삶이 성도의 삶입니다
. 예수님의 부르심은 오직 예수님의 직권이고 예수님의 권이고 권한입니다
. 예수님의 예수님이 베드로를 부르심은 전혀 완벽하지 않을지라도 예수님으로 인하여 완전하게 하시는 은혜의 부르심입니다
. 예수님의 은혜의 부르심으로 인하여 베드로의 믿음 위에 교회를 세우십니다
. 이것이 예수님의 권이고 예수님의 권한입니다
. 예수님의 직권으로 예수님의 권한으로 오늘 우리도 예수님께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 예수님은 오늘 우리를 교회로 부르셨습니다
. 우리를 통하여 내 어린 양을 먹여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여라는 일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 그리고이 명령은 말씀으로 양육하고 공동체를 돌보며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거룩한 사명입니다
. 우리의 삶을 돌아봅시다
. 어떤 실패가 여러분을 가라앉게 합니까? 지금 주저앉게 합니까? 직장에서의 자절, 가정에서의 갈등, 육신의 아픔, 신앙의 연약함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그 순간에도 함께 계십니다
. 예수님은 임마누엘로 약속하신 대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 이것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 이번 휴가는 어 제게 은혜의 시간이었습니다
. 사실 휴가를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 하나님 하늘꿈에는 어떻게 해요? 기도하는데 어 하나님이 제게 너는 가라. 내가 일한다
. 야 이것도 못 맡기면서 무슨 사명을 감당하겠다고 그러냐? 내가 내 교회를 세운다
. 너는 종이지 주인이 아니다라는 마음을 강하게 주셔서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 진짜 걱정, 염려, 근심 없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안식하고 돌아왔습니다
. 저와 여러분은 베드로처럼 완벽하지 않습니다
. 대로는 믿음을 지키다가 자랑하다가 실패하고 예수님을 부인하며 도망칩니다
. 그런데도 예수님은 이런 우리의 연약함을 다 아시면서도 다시 부르십니다
. 베드로의 연약함을 반석으로 삼고 그 믿음 위에 교회를 세우신 예수님이 오늘도 우리를 교회로 부르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저와 여러분의 실패와 연약함을 다 아시고도 내 양을 먹이라고 명령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완벽하지 않지만 예수님의 은혜 안에서 완전해질 수 있습니다
. 그래서 교회는 소망입니다
. 교회에 소망이 있습니다
. 우리를 교회로 부르신 예수님이 소망이시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이 지금 우리를 교회로 부르고 계십니다
. 이제 우리의 연약함을 완전함으로 바꾸시며 그물을 던지라고 내 양을 먹이라고 사명을 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그리고 그분의 음성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 예수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삶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그의 교회를 통해 세상을 섬기는 믿음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이 시간 우리 함께 우릴 사용하소서 찬양하고 어 기도하는 시간 갖도록 하겠습니다
. 습니다
. 기도하는 마음으로 고백합니다
. 우리에겐 소원이 하나 있네. 우리에겐 소원이 하나 있네. 주님 다시 오실 그날까지 우리 가슴에 생기 주의 십자가 사랑 나의 교회를 사랑게 하네. 주의 교회를 향한 우리 마음과 고기와 가난과 고난 물며 죽음조차 우리 막을 수 없네. 우리 교회는이 땅에 임 교회는 교회 외계 예배 예배 외에 우리 사용하소서. 진정한 풍의 날 오늘 임하도록 우리 사용하소서. 우리 처음부터 한 고백합니다
. 우리에게 소원이 하나 주님 다시 오실 그날까지 우리 가슴 생긴 주의 십자가 사랑 나의 교회를 사랑케 하네. 주의 교회를 향한 우리 마음과 포기와 다과 도안며 주조차 우리 막을 수 없네. 교회는이 땅에 임하 교회를 교회게 교회를 교회 예배 예배 우리 사용하소서 진정한 날 들림하도록 우리 찬양하소서. 성령 안에 예배하겠습니다
. 성령 안에 예배하이라. 자유의 마음으로 사랑으로 사역하리라. 교회는 생명이니 교회를 교회 외에 예배 예배 회개 우리 사용하소서 진정한 날 오늘 임하도록 우리 찬양하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연약한 우리를 주님이 부르시고 교회로 세우십니다
. 주님께서 맡겨 주신 우리의 사명을 감당하시길 원하고 계십니다
. 우리 주님을 붙들고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도 완전하게 하시는 우리 주님을 의지하며 나아갑시다
. 우리 주여 믿습니다
. 하시고 기도하며 나아가겠습니다
. 주여 믿습니다
. 합니다
. 소망이신 하나님. 연약한 우리를 부르시고 완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 우리를 교회로 부르셔서 귀한 사명을 맡겨 주시고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고자 하는 주님의 음성을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한 번 더 확인시켜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교회가 소망입니다
. 세상이 뭐라고 하지만 교회에 소망이 있습니다
. 우리를 교회로 부르신 예수님이 우리의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 이제 그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함으로 나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연약함을 완전함으로 바꾸시며 사명을 주시는 주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힘과 지혜를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날마다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 안에 살아가게 하여 주시고 그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높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교회를 통해이 땅 가운데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흘러가고 구원의 역사가 계속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 그 주님을 바라보며 소망 안에 거하는 모든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아멘.